[대한경제=안재민 기자]“건설엔지니어링 산업의 발전과 엔지니어의 자존감 회복, 두가지 목표만 보고 가겠습니다”
지난 2월 취임해 3년 임기를 시작한 제15대 한국건설엔지니어링협회 김종흔 신임 회장은 13일 <대한경제>와 인터뷰에서 임기 내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건설엔지니어링업계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각종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이 설계ㆍ건설사업관리 업체의 탓으로 돌려지면서다.
김 회장은 “사고가 발생하면 건설엔지니어링 업계를 과도하게 탓하는 등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어렵게 하는 규제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시기에 업계를 대표하는 건설엔지니어링협회 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발생한 건설현장 안전사고를 막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건설엔지니어링 업계도 일부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다만, 건설산업 전분야의 복합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며 우리 산업에서는 예산부족으로 적정인력을 배치해주지 않는 문제 등 제도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회장은 “지난해 부실설계 입찰 제한 기준 신설 등을 골자로 하는 ‘행안부 지방계약법 개정안’이 발의돼 업계에서 적극 대응 방어했지만, 업계를 옥죄는 규제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며 “임기 첫 해를 맞이해 이같은 각종 규제 신설에 대응하면서도 기존에 업계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규제들을 개선하는데 비중을 실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입 이후 줄곧 도마 위에 올랐던 ‘종합심사 낙찰제(이하 종심제)’ 개선도 추진할 방침이다.
종심제는 건설엔지니어링산업 기술경쟁력 향상 등을 목적으로 지난 2019년 3월 도입한 제도다. 추정가 기준 △30억원 이상 기본계획·기본설계 △40억원 이상 실시설계 △50억원 이상 건설사업관리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 선정 방식이다.
김 회장은 “종심제는 고난이도 프로젝트의 사업자를 선정할 때 기술력을 평가하겠다는 게 도입 취지였다”며 “단순히 금액 기준으로 적용 여부를 결정하면서 기술력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아닌 작은 사업들이 묶어져 종심제로 발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종심제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여러 부작용이 많이 발생되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실정으로, “종심제를 폐지하거나, 시공 분야의 기술형 입찰처럼 난이도에 대한 심의 절차를 거쳐 종심제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와 환경부가 적용하는 각종 ‘중복규제’ 역시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019년 말 공공조달 분야의 규제 합리화 목적에서 ‘입찰참가자격제한을 받은 업체에 대해서 제한기간 만료 후에도 PQ 심사 시 감점을 당하는 규정을 폐지해 부정당업자에 대한 과잉제재 소지 해소’를 골자로 계약예규를 개정했다.
이에 국토부는 공공공사 PQ 평가 시 입찰참가자격제한 제재 후 건설엔지니어링사에 부여했던 감점 규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영업정지 제재 후 PQ 평가 감점은 유지하고 있다. 입찰참가자격제한은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을 근거로 하고 있고 영업정지는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근거 법령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설계업무의 특성 상 하도급 업체와의 협업이 불가피함에도 하도급 승인 위반의 경우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 등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고 있어 시공분야와의 형평성 등을 감안 할 때 승인 절차를 신고로 개선하고 규제도 완화하여야 한다.
업체ㆍ기술인이 책임과 의무를 다했음에도 부실 공사가 발생하면, 업체와 기술인 모두에게 벌점을 주는 건진법상 ‘양벌규정’도 임기내 개선 대상이다.
업계 수주와 직결되는 국토부의 ‘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 개선도 추진한다
김 회장은 “국토부 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에서는 과업 종료 후 수행실적을 평가하고 이를 PQ 점수에 반영한다”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객관적 업무 수행이 어려울뿐더러 해당 발주처에 수행실적이 없는 기업은 0.2점∼0.4점의 감점요인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역량과 관계없는 감점이 발생할 수 있기에 수행실적 평가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국토부 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의 ‘업무중복도’ 평가 항목도 폐지 혹은 완화를 추진한다.
현재는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인별로 단순히 2∼3건의 사업(200~300%)을 수행해야만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김 회장은 “환경영향평가처럼 발주기간 내에 중복되는 프로젝트 수행금액 합산을 기준으로 업무중복도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 심각한 고령화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PQ평가시 ‘초급 기술인 평가’를 제외하는 것도 추진한다.
현재 PQ 제도에서는 초급 기술인들의 경력에 따라 평가 점수가 갈린다. 대학교 졸업 후 현장에 뛰어드는 사회 초년생들은 만점에 해당하는 경력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자연스레 업체들은 사회 초년생인 초급 기술인들의 채용을 선호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건설사업관리사업에서 초급기술인에 대해 경력기준 평가를 제외하고, 일정규모 이상의 공사에는 청년기술인을 실질적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고 말했다.
이같은 제도 개선은 협회는 물론이고 업계가 모두 힘을 모아야만 가능하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건설엔지니어링 산업은 고도의 전문기술을 바탕으로 건설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는 핵심 산업”이라며 “1960년대부터 주요 국가 인프라 구축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으며 국민의 삶과 복지에 크게 영향을 미쳐온게 바로 엔지니어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가득했던 엔지니어들이 현재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정책과 녹록치 않은 시장 환경 탓에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졌다”며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을 대표하는 단체의 장, 그리고 선배 엔지니어로서 산업과 엔지니어들이 처한 현실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의 위상강화와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저 역시 산업 발전과 엔지니어 자존감 회복을 협회장 그리고 엔지니어로서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발로 뛰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1961년생인 김 회장은 부산출신으로 한양대 토목공학을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교통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로 및 공항기술사 자격을 가진 그는 1984년 한국도로공사에 입사 후 도로처장과 해외사업처장, 교통처장, 수도권 건설사업단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 지난 2017년부터 서영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안재민 기자 jmahn@dnews.co.kr